20131210_Arts&Culture_01

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핀란드/헬싱키) -
ARCHI TALK 13.12.02

범건축의 정태남 부사장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정태남 부사장님은 건축분야 외에도 역사 음악 미술 언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시는 이탈리아 건축가입니다.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 하시고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등 많은 책을 출간하시기도 했습니다^^

이번 Arts&Culture 12월호에 소개되는 정태남 부사장님의 멋진 사진과 글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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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자부심이 담긴 과문 헬싱키 중앙역

내가 탄 비행기가 반타아 국제공항을 향하여 구름을 뚫고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북유럽의 하늘은 밝다가도 갑자기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 사이를 뚫고 한 줄기의 햇빛이 지상으로 떨어진다. 이 광경을 보니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격정적인 음악으로 시작하여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로 끝맺는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 Op.26의 선율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려 나오는듯하다. 핀란드의 고대서사시 <칼레발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이 곡은 독립된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핀라드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기 때문에 핀란드를 지배하는 러시아는 이 곡이 <핀란디아>라고 불리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공항에서 시내를 연결하는 핀에어 버스를 타고 헬싱키 시내로 들어간다. 도로변에는 푸른 숲과 호수가 펼쳐지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불그스름한 큰 화강암 덩어리가 곳곳에서 푸른 대지를 원대한 힘으로 뚫고 나오려는 듯 보인다.

버스가 도시영역 안으로 들어섰는데 사람들이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핀란드는 땅은 넓은데 인구를 모두 합쳐야 500만 명도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런데 인구비례로 볼 때, 핀란드만큼 좋은 건축이 많이 세워지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곳처럼 건축이나 디자인이 국민들의 일상대화에 흔히 오르내리는 곳도 드물다. 좋은 건축이 많이 세워지면, 실내디자인, 산업디자인 등도 아울러서 발달하는 법. 사실 핀란드는 건축뿐만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핀란드의 건축에 대해서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그 자부심의 구심점을 이루는 인물은 알바르 알토(1898~1976)이다. 그는 20세기의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한 핀란드의 국제적인 위상을 최고로 올려놓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20세기 초에 핀란드 건축의 갈 길을 제시한 위대한 선배 건축가들이 있었으니,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리엘 사리넨(1873~1950)이었다.
공항버스가 종점에 도착하자 헬싱키 중앙역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이 역은 핀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그스름한 화강석으로 세워져있다. 역 내부에 들어서니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이 던지는 빛이 커다란 창을 통해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다.
이 역은 핀란드 내 모든 주요도시와 러시아의 상태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기차가 떠나는 핀란드의 관문으로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것은 이 역이 핀란드의 관문이어서가 아니라 이 역이 지닌 역사성과 핀란드적인 독특한 디자인 때문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860년에 세운 조그만 역이 있었으나, 철도망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역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큰 역이 필요했다. 이리하여 1904년에 열린 공모전에서 31세의 젊은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의 작품이 선정되었고, 디자인 수정을 거쳐 역은 1909년에 착공,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2년 후인 1919년에 완공되었다.
이 역의 외관을 보면, 수직으로 솟은 시계탑과 커다란 아치형 지붕과 큰 창문이 건물 전체의 모습을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육중하면서도 역동인 인상을 던져준다. 그러면서도 건물의 세부를 장식하는 핀란드 고유의 문양들은 건축과 완전히 일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이 역의 전체적인 인상은 커다란 입구를 양쪽에서 손에 구형의 램프를 들고 마치 신성한 장소를 지키는 보초처럼 서 있는 근엄한 얼굴을 한 두 쌍의 거대한 남성상으로 더욱 강조된다. 이 조각상은 건축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 건물의 외관을 살려주고 있는데, 이를 조각한 에밀 빅스트룀(1864~1942)역시 시벨리우스와 마찬가지로 핀란드 고유의 전설과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 역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널리 유행하던 아르누보(또는 유겐트슈틸)양식의 북유럽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북유럽식 건축을 보통 민족 낭만주의 건축이라고 부른다. 민족낭만주의 건축가들은 그때까지 서양에서 널리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을 멀리하고, 기존에 잘 알려진 건축양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북유럽 고유의 고대 및 중세 건축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리넨은 핀란드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많이 설계했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면서 20세기 초반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의 반열에 올랐다. 핀란드 고유의 간결한 아름다움과 당시 널리 국제적으로 유행하던 경향이 결합된 헬싱키 중앙역은 그가 남긴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고 보니 시벨리우스가 음악을 통하여 핀란드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장본인이었다면, 사리넨은 민족낭만주의 양식의 건축을 통하여 막 걸음마 단계에 있던 핀란드적인 건축이 자리매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박 소정 | BAUM ARCHITECTS
BAUM ARCHITECTS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범건축 사람들 이야기와, 공개되지 않았던 프로젝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