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지속하며 나와는 전혀 다른 영역을 다루는 건축가 정기용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수천 점에 이르는 그의 스케치를 뒤지면서 든 생각이다. 일상에 대한 소묘도 많았고 기억 속의 풍경에 대한 그림들도 있었고 여행스케치도 있었다. 다양한 그림들 속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그림들은 하나의 도시에 대한 구상안이었다. 일종의 여러 가지 마스터플랜이 나왔다. 누가 의뢰한 것들도 있었고 그저 자신이 꿈꾸는 도시를 그려낸 것들도 있었다. 나는 그 몇 장의 스케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실 미술적인 완성도로 평가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저 낙서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스케치들을 그릴 때의 정기용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바친 무주 안성면에 대한 계획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특히 사랑스럽다. 나름 무주 안성면에 대한 마스터플랜인 것이다. 1999년 3월 17일에 그린 이 스케치는 1/25,000의 스케일로 작성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다. 나는 이 스케치를 보며 ‘한 번도 꿈꾸어보지도 욕망해보지도 않은 걸 욕망하는 자가 건축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빈 땅을 보면서 거기에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공간을 꿈꾼다. 그 꿈은 한낱 몽상에 불과하고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한 남자가 색연필들을 들고 빈 종이에 가득 자신이 꿈꾸는 도시와 공간을 흥분하며 그렸을 그 집중된 순간을 상상해보면,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고 또 한편으로는 나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또 다른 자아의 열정을 느끼게 된다.」’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한 번도 꿈꾸어보지도 욕망해보지도 않은 걸 욕망하는 자가 건축가’ 욕망을 종이위에 그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