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피플 릴레이 인터뷰 박현규 소장편 -
STORY 11.04.13

범건축 인물탐방 02 -박현규 소장 / 진행: 백상월(건축프리랜서), 일러스트 길쭉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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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가죽 재킷에 적당히 헝클어진 머리칼, 그리고 조금 더 자유분방하게 자란 수염.
등장과 함께 한눈에 박힌 인상, 그리고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
이렇게 시작된 두 번째 범사람 이야기 _박현규 소장님

1.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소개로 시작해주시죠.

▶ 안녕하세요. 박현규 소장입니다. 범건축에는 2002년에 입사했으니 내년이면 10년이 되네요. 즉, 내년이면 금 10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죠(^^).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축가 민선주(현 연세대 교수) 씨가 운영하던 위가건축에서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과거 5~6년 정도 대학 강의도 했었는데, 현재는 조직생활과 병행하기가 힘들어서 회사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2. 아뜰리에와 대형 설계사무실을 모두 경험하셨네요. 두 곳의 보이지 않는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아뜰리에는 설계(작업)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이고, 나머지는 사람들과 그 관계가 차지하죠.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사무실의 환경이 불만족스러워도 ‘누구 때문에’ 혹은 ‘이 사람과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남을 수 있는 곳이 아뜰리에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시간보다 관계 형성에 소요되는 시간이 좀 더 많다 할지라도 용서되는 곳이랄까? 물론 그래서도 안 되고 실제로는 그런 아뜰리에도 없지만, 체감하는 분위기는 그런 편이에요. 아무래도 앞에서 끌고 가는 개인의 브랜드가 큰 윈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개인들의 관계보다는 조직이라는 네트워크가 강해지고, 회사 운영과 관련된 일들이 많아지니까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죠.

3. 향수가 섞인 해석으로 느껴지네요. 그렇다면 범건축은 어떤 사무실인가요?

▶ 2002년 면접에서 ‘범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받았어요. 그래서 솔직하게 ‘별다른 컬러가 없는 사무실 같다’고 대답했는데, 뽑아주셨어요(^^). 당시 100여 명 정도의 규모였는데도 그에 비해 아뜰리에의 성격이 상당 부분 남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인지 학교나 다른 사무실과의 관계에서도 특별히 모난 행적들이 없어서 안티도 거의 없었고요. 하지만 범건축의 규모가 300여 명으로 확대되면서 그에 수반되는 변화가 필요했고, 그동안 일정 비율을 유지하며 조율해왔던 성격도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었죠. 이 시점부터 안티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불가피한 변화입니다.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장기근속자들)은 그러한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언더그라운드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회사가 조직사회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부분도 있지요. 결국에는 양날의 칼인 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타의 대형사무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경쟁력으로서의 그 성격! 이러한 면에서 현재의 범건축은 과도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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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피플 릴레이 인터뷰. 02 – 범건축 회의실 (2011년 4월 6일)

 

4. 범건축 블로그 ‘B양의 건축다이어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제가 봤을 때 블로그는 점 조직이에요. 누군가 생각을 내뱉고 그것이 소통되는 과정이 눈에 보여야 사람들의 호응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범건축 블로그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명확한 캐릭터를 구축한다면 승부를 걸 수 있겠죠. 이것저것 욕심내기보다는 사람들이 하나의 지점으로 집중할 수 있는 성격이 필요한데, 저는 그것이 ‘솔직함’이었으면 합니다. 한 예로, 임원들 앞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치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민하는 만큼 시도할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도록, 어렵겠지만 블로그가 그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해야죠. 초반에 적극적인 몇몇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역시 중요한데, 건축 외적인 부분이나 비판적인 의견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맡아도 좋고요!

5. 블로그의 속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평소 블로그나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시는 편이신가요?

▶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과거에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한 적이 있어요. 부인도 요리와 관련된 웹페이지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고요. 사실 면접 때에도 포트폴리오 대신 홈페이지 주소를 제출했거든요. 지금은 업데이트가 제대로 안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프로젝트, 강의내용, 결혼, 아이들 사진까지 제법 열심히 했어요.

6. 드디어 언급됐네요. 이제 결혼과 아이들처럼 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 제가 범건축에 2002년 3월에 입사했는데 6월에 쌍둥이가 태어났고 8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입사한 첫 해에 개인적으로도 큰일을 치렀죠. 그 쌍둥이들이 한참 자랄 때는 둘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니까 스케치북을 조달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모은 이면지를 가져다주곤 했죠. 그중에 도면도 섞여 있었는데, 어느 날은 아이들이 하얀색 뒷면이 아닌 도면 위에 선을 따라 그리더라고요. 그러다가 선과 선 사이를 잇기도 하고 구획된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지만 너무 놀라서 그 이후로는 집에 이면지를 가져가지 않았어요.(–;)

7. 건축에 대한 애증인가요? 건축 이외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 범건축에서 10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리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멈춰야 했던 일들도 많아요. 대표적으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푹 빠져 있던 기타와 그 시절의 풍류가 그립죠. 아뜰리에 시절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유지했는데 범건축에 들어와서는 끊어졌어요. 얼마 전부터 부인과 쌍둥이가 집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데, 그럴 때면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는 제 클래식 기타가 쓸쓸해 보이죠. 여유가 생겨도 이제는 두려움이 생겨서 쉽게 잡을 수 있을까 싶어요.

8. 기타(음악)도 건축만큼이나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인생에서의 꿈은 무엇인가요?

▶ 기타코드인 ‘C7’입니다. 사실 C7이 마무리 코드는 아니에요. 제가 쓴 곡 중에 몇몇은 C7으로 끝나는데,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나 여운이 감도는 파장이 생기거든요. 건축도 100% 만족하지 않는 한 완결은 없잖아요. 인생에서의 역할도 그렇고. 그래서 C7이 좋아요. 여운이 남는 건축, 여운이 남는 삶을 사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9. 마지막으로 범건축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세요.

▶ 예능프로그램으로 비유하면, 누가 먼저 확실한 캐릭터를 잡느냐가 중요하잖아요. 중복되는 캐릭터로는 성공하기 힘드니까 차별화가 필요하고, 부딪히면 잡아먹든가 포기하든가 선택해야 하고. 범건축 안에서 각자의 적절한 포지션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는 아수라백작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도 윗사람에게는 강호동 역할을, 아랫사람에게는 유재석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저 또한 그러려고 노력하고요. 윗사람에 인정받는 것보다 동료나 후배들, 팀원들에게 인정받기는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죠. 나아가 각자의 위치에 맞는 말고 행동을 할 수 있는 범건축 사우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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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규 소장이 작곡한 노래 악보와 키타 치는 젊은(?) 그의 모습.

 

박현규 소장님의 인사말 동영상으로 인터뷰를 마칩니다.

인터뷰의 마무리도 C7: ‘참 솔직한 사람’이라는 파장 & ‘못 다한 이야기’의 여운 _●

BAUM P.R Section | BAUM ARCHITECTS
디자인이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시점에서 즉각적인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미래는 통합적인 디자인의 혁신과 앞을 내다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범건축은 디자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슬기로움으로 건축을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