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문 훈을 만나다 -
ARCHI TALK 11.05.03

건축가를 만나다 03_문 훈(문훈건축발전소)/ 진행: 백상월(건축프리랜서), 일러스트 길쭉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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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개나리 색, 벚꽃 색, 진달래 색 그리고 새싹 색이 제 세상을 만나 신나게 터지기 시작할 무렵, 온통 빨간색인 공간으로 유명한 문훈건축발전소를 찾았다. 여타의 주거지와 별다를 것 없이 한적하고 건조한 어느 동네에 갑작스레 불시착한 UFO. 호기심 혹은 경계의 대상이었던 이 공간도 그간의 세월을 버텨내며 이제는 어엿하게 영역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 멀리 파란 하늘에서는 아스팔트 색과 콘크리트 색으로 덮인 캔버스 위에 시뻘건 고춧가루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 웃음이 났다. 아니다. 어쩌면 심홍색의 루비로 보고 주우러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단 들어가서 그 정체를 확인해보는 것이 순서일터.

문을 열고 들어선 빨간 공간은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과 제법 잘 어우러지고 있었고, 반갑게 손님을 맞는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에도 붉은 기운이 한껏 감돌았다. 그렇다면 이제 공간의 주인인 건축가 문 훈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펴볼 차례다. 빨간 공간과 그 공간을 만든 사람, 그리고 그가 만드는 공간에 대하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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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 주택가에 위치한 ‘문훈발전소’ 입구 전경. – 많은 사람들이 ‘점 집’ 인줄 알고 들어온다고 한다.

1. …….안녕하세요. 초면에 인사하는 것도 잊게 만들 만큼 진짜로 온통 빨간색이네요.

▶ 반갑습니다. 일단 편하게 앉으시고, 시간이 괜찮으시면 천천히 하죠. 그리고 가급적이면 건축이야기는 반만 하고 재밌는 이야기, 다른 인터뷰에서 안 했던 이야기로 합시다.

일단은 무조건 ‘재미있는!!’을 강조하는 그는 발렌타인 17년 위스키를 권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이끌어 내었다.

_ 인사를 나누자마자 어색할 틈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범건축에서 설계한 요양원의 증·개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범건축과의 인연에서부터 얼마 전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그만뒀다는 이야기, 모형으로 꾸민 전면의 쇼룸(?)과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응까지. 딱히 묻지 않아도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엮여 나온다. 외모와 상당한 괴리감을 제공하는 그의 말주변에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덕분에 이후의 인터뷰는 흥겹게 진행됐다. _●

2. 생각보다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살짝 놀랬어요.

▶ 제가 거절 안 하기로 유명하거든요.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잖아요. 그런데 간혹 인터뷰 게재를 빌미로 잡지를 강매하려는 경우가 있어서 당혹스럽긴 하죠. 그런 것만 아니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요.

_ 실제로 종종 퇴근 후에 들러 담소를 나누고 가는 사람도 있단다. 하루 종일 빡빡한 설계사무실에서 치이다가 극적으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쉬어가는 사람마냥 이곳을 찾았을 누군가의 심정이 금세 공감됐다. 이곳의 분위기와 주인(적어도 이 공간에서는‘건축가 문 훈’보다 주인이라는 지칭이 더 어울린다)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절절한 조언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희망을 안겨 준다. 들르는 사람들은 보통 연락도 없이 그저 찾아온다는 그의 말에 힘입어, 나 역시 다음에는 그저 지나가다 잠깐 들러 붉은 기운을 충전해가리라는 용기를 다짐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시도해보시기를. 주인장의 성격상 적어도 어색하고 민망할까 두려운 걱정은 안 해도 되니,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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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인터뷰에 응하는 건축가 문 훈.

3. 사무실도 전체가 빨간색이고, 개인적으로도 빨간색을 매우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 어떻게, 얼마나 빨간색을 좋아하시는 거에요? 자칫 집착 수준으로까지 보이기도 하는데.

▶ 사실 우리가 빨갛잖아요. 한 꺼풀만 벗겨내면 몸속에 흐르는 피가 빨간색이니까 특이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는 것이죠.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데 오히려 익숙해지니까 점점 더 좋아져요. 이제는 (앞에 놓인 노트를 내밀며) 글씨도 빨간색으로 쓰잖아요. ^^ 아, 옷도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너무 인터뷰마다 빨간색 재킷을 입어서 오늘은 좀 다르게 입은 거에요.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빨간색을 좋아하긴 한 것 같아요. 옛날 사진을 보면 유난히 빨간색이 많거든요. 정확한 기억으로는 미국 유학시절부터 빨간색을 쓰기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부족한 내용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체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적으로도 밖에서 보니 비로소 안이 보인 것이고, 진정한 내면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_ 그에게 있어서 빨간색은 좋아하는 색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빨간색으로 시작된 이야기에 정체성이라는 단어까지 오고 갔다. 물론 하나의 색깔로 그를 정의하려 드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취향이나 기호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건축가 문 훈과 빨간색은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린 듯하다. 오죽하면 건축물에 쓰인 빨간색을 보면 제일 먼저 그가 생각날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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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무실 집기류. 온통 주변을 둘러보면 붉은색 뿐이다.

4. 명함도 빨간색이네요. 노란 보름달과 산도 익숙한 것이 단번에 8번 동양화(?)가 연상됩니다. 이렇게 특이한 성향에 대해 반응은 극과 극일 것 같아요. 너무 드러내서 그럴 수도 있고, 순수한 취향보다는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 반응은 그야말로 극과 극일 수 있죠.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막상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만약에 꾸며서 하는 것이라면 거북스러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의식적이거나 작위적이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 할 수도 없잖아요.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정말로 좋아서 하는 것이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에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커밍아웃(?)이 건축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에요. 건축주가 오해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허술하죠. 그렇기 때문에 일을 수주하는 데에는 득보다 실이 많아요. 뭐,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득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 기대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그렇게 계획적이지도 못하고요.

5. 최근에 화제가 된 ‘락(樂)있수다’이야기를 해보죠. 일반 매체에서도 많이 소개되고 인터넷에 관련 포스트도 상당하더라고요. 건축계에서는 이견이 많지만 대중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건축물임에 틀림없습니다.

▶ 예를 들어 기존에 버섯 모양의 팬션이 많잖아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면 버섯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벽에서 버섯이 재배되는 것도 아니고. ‘락있수다’는 사진으로 잘 찍히지가 않아요. 왜곡되고 동적인 공간이 많아서 하나의 앵글로 잡기에는 힘이 들죠. 오히려 좁은 공간은 더 좁게 보이도록, 높은 공간은 더 높게 보일 수 있도록 표현하는 사진이 적합하죠. 이것이 건축계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결과물로 보면 색깔과 매스가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공간은 묻히고 있는데, 설계는 내부에서 외부로 향했습니다. 공간을 먼저 설계하고, 그 결과로서 형태를 구축한 것이지요. 결국 공간에 충실하다 보니 골격은 기괴해진 것이지요. 기회가 되면 직접 가서 보세요. 내부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과 외부를 바라볼 때의 뷰는 특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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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노트와 드로잉 작품들.

6. 스타일이 워낙 특이하다보니,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일정 부분 기대하고 오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 희한한 것이, 아직도 우리나라는 건축주들이 취향이 없는 것 같아요.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라 관계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작업한 것도 대부분이 그렇고요. 그래서 컨셉과 디자인을 제안했을 때 건축주들이 많이 놀라요.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충분히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면 납득을 합니다. 그것이 건축가의 능력이기도 하고요. 물론 마지막까지 타협이 힘들면 제가 접어야죠. 예전에 논현동에 고시원을 설계할 때, 지형과 용도 등 모든 컨텍스트를 반영해서 설계를 했는데 건축주가 메쉬(mesh)만 싫어하더라고요. 결국 건축주의 의견을 따랐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 없어 한쪽에만 살짝 사용하는 것으로 타협했죠. 빨간색도 포인트로 군데군데 썼고요. 지금은 그 동네에서 제일 인기 좋은 고시원이 됐어요.

7. 때로는 자극적인 형태와 색깔 때문에 건축가 자신도 그렇고 건축물 자체가 평가 절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살짝 죽일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이를 테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죠.

▶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번 다르게 하려고 하고요. 저는 형태적일 수밖에 없어요. 형태를 좋아하고 형태가 전부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박시한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잖아요. 자동차에서도 디자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요. 건축에서도 형태는 매주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해요. 형태로서 공간을 전달하는 것이지요. 공간은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데 형태가 있을 수는 없지요. 저는 안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합니다. 압축되고 확장되는 공간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의 형태, 형태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할 것은 하되, 형태를 부정하지 말고 솔직해지자는 것입니다.

_ 솔직해지자고 말하는 이 건축가, 참 솔직하다. 여기자랑 인터뷰하면서 여자의 몸에 대해 이토록 솔직한 소견을 내놓다니! 예의상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까지 굳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이 사람. 이러한 솔직함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다가가고, 어쩌면 무례함으로까지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이 사람. 건축가 문 훈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는 그의 건축처럼(아니, 그의 건축이 그를 닮은 것이겠지만) 지극히 대담한 사람이다. 드러나는 야함이 좋다는 그의 대담함은 자신감이다. 자신의 표현이, 그리고 건축이 어떠한 기본으로 다져졌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이목을 신경 쓰기 시작하면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그까짓 것 일 하나 더 하는 것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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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작품(?) 알 수 없는 그의 탐구심의 결과물들…

8. 정말 흔하지 않은 인터뷰였습니다. 이렇게 긴장하지 않고 재미있게 인터뷰하는 경우가 진짜 흔치 않거든요. 마지막으로 범건축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한가득 해주세요.

▶ 범건축의 이미지는 좋다고 생각해요. 안 좋은 소문도 별로 못 들어봤고, 건축가 김준성(현 건축스튜디오 핸드 hANd) 선생과 협업도 했고. 다만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타의 대형 설계사무소가 무분별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아뜰리에가 페라리를 만들면 범건축은 BMW 만들면 되죠. 범건축만의 영역을 확실하게 하면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독립하는 것만이 건축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옆에서 하니 나도 해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들뜨지 말고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야죠. 시스템에 충실하면 그 안에서 더 훌륭한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기왕이면 취미를 가져서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우고요. 범건축 사람들은 범(虎)처럼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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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즐겁게 살자는 그의 메시지를 뒤로하며…

_ 시종일관 시원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픽 ’소리 나는 실소가 섞인 인터뷰였다. 100% 공감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대략 공감하기 힘든 이야기가 적절히 어우러진 탓이다. 상대방의 공감 여부를 떠나 건축가 문 훈의 이야기는 솔직하고도 대담했다. 가끔씩 밀려드는 ‘이 사람 뭐야’ 하는 생각이 기분 나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인터뷰 말미에서 찾았다. 과한 농담처럼 내뱉었던 이야기에도 그의 진정성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굳이 포장하려 하지도 않고 감추려 하지도 않았던 솔직함 안에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재미는 꾸며지지 않은 건축가 문 훈을 닮았다. 형태로서 제일 중요하다는 공간을 표현하는, 내부에서 출발해 외부를 설계하는 건축가 문 훈 말이다. _●

_ 긴시간동안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신 건축가 문 훈 님께 감사드립니다. _●

BAUM P.R Section | BAUM ARCHITECTS
디자인이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시점에서 즉각적인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미래는 통합적인 디자인의 혁신과 앞을 내다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범건축은 디자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슬기로움으로 건축을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