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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오스트리아, 빈 -
STORY 15.09.02

Arts & Culture Vol.116, 9월 호에 정태남 부문장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이번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빈입니다.

 

빈의 핵심지역은 150년 전에 건설된 링슈트라세(Ringstrasse)라고 하는 순환도로 안에 감싸여져 있다. 이 도로는 폭은 57미터, 총 길이는 4킬로미터가 되는데, 원래는 빈의 중심부를 방어하고 있던 굳건한 성곽을 헐어내고 만든 길이다. 현재 이 순환도로에 면한 대형 공공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단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궁인 호프부르크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276년부터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거의 650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상당부분을 지배했다. 호프부르크는 바로 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요새이자 궁전으로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방대한 ‘왕궁 단지’가 되었다.

호프부르크가 링슈트라세와 만나는 지점에는 널따란 헬덴플라츠(Heldenplatz), 즉 ‘영웅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이 광장에는 노이에 부르크(Neue Burg)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문자대로 번역하면 신궁(新宮)이다. 이것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기존의 ‘왕궁 단지’에 덧붙여진 것으로 호프부르크의 궁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영웅광장의 분위기를 근엄하게 지배하고 있다.

신궁(新宮)의 정면은 마치 오목 거울처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오목거울’의 초점이 되는 곳에는 사보이아 가문의 오이겐(Eugen von Savoyen 1663~1736)공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고, 이 기마상을 마주 보는 건너편에는 합스부르크-데셴 가문의 카를(karl von Habsburg-Teschen 1771~1847)대공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이를테면 이 광장의 ‘주인공’이 되는 두 영웅이다.

카를 대공이라면 한때 나폴레옹의 무서운 적수였던 인물이다. 1809년 5월, 빈을 침공하기 위해 도나우 강 건너편에 집결한 나폴레옹 군대는 카를 대공이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대에 크게 패했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무적의 나폴레옹으로서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봤던 것이다. 그런데 이 카를대공의 기마상은 아주 날렵하게 보인다. 즉 기마상의 무게가 오로지 말의 뒷발에만 모두 집중되어 있는데, 사실 이런 형태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는 일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1860년에 이를 제작한 독일 조각가 안톤 페를코른(Anton Fernkorn)의 뛰어난 구조공학적인 감각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오이겐 공의 기마상도 바로 그가 1865년에 완성했다. 하지만 이 기마상은 카를 대공의 기마상에 비하면 날렵함이 많이 떨어지고 구조적 안정을 위해 꼬리부분을 아주 두껍게 하고 바닥에 닿게 처리해서인지 둔탁하게 보인다.

오이겐 공은 카를 대공과는 달리 합스부르크 왕가와는 직접적인 혈연적인 연고가 없는 프랑스-이탈리아계의 사보이아 가문 출신으로 파리 태생이다. 그는 19세 때 프랑스에서 루이 14세의 군대에 입대가 거부되자 20세가 되는 해인 1683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레오폴트 1세 군대에 들어가 수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는데 특히 오스트리아를 위협하던 오스만 튀르크 군대를 완전히 격파하여 유럽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되었다. 그는 비록 키도 작고 외모도 볼품이 없었지만 이미 30대에 합스부르크 군대의 총사령관직까지 올라갔으며, 레오폴트 1세 이후에도 요제프 1세, 카를 6세까지 모두 3대의 황제에 걸쳐 ‘무대 뒤의 황제’의 역할을 했으며 그의 혁혁한 무공 덕택에 오스트리아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번영과 평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영웅을 기념하는 바로 이 광장에서 1935년 3월 15일에 수많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운집하여 또 한 사람의 ‘영웅’을 영렬히 환대했다. 그의 이름은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 유럽을 온통 죽음과 파괴의 도가니로 휘몰아 넣은 이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최고 권력자는 수많은 군중 앞에서 오스트리아를 독일과 합병한다고 공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영웅’은 오스트리아에 번영과 평화가 아니라 엄청난 재앙만을 불러온 장본인이었을 뿐이다.

/ 글, 사진 : 정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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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정 | BAUM ARCHITECTS
BAUM ARCHITECTS 홍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범건축 사람들 이야기와, 공개되지 않았던 프로젝트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