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이용주를 만나다. -
ARCHI TALK 11.08.31

새로운 기획코너로 대중문화 및 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는 ‘예술인을 만나다’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만나고 싶은 대중문화인, 예술인, 작가 등을 만나서 그들의 작품세계관을 알아 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건축과 연관된 또는 건축과 무관한 인사라도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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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터뷰는 이용주 감독. 2009년 <불신지옥>이라는 공포영화로 데뷔한 영화감독이다. 대중적으로는 크게 흥행하지 못 했다고 하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사실 어느 감독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가 만든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이용주’ 그 이상이기에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도 있지만,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 이력을 빌미로 그와 만났다. 먼저 명함을 건네고 빈손을 주저하고 있는 기자에게 “죄송합니다. 저는 명함이 없습니다. 그냥 이용주입니다.”라는 말로 대화는 시작된다.

건축계 출신 영화감독 이용주 / Illust – 길쭉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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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갑습니다. 저는 건축기자이고, 범건축 블로그 ‘B양의 건축다이어리’에 게재될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왔습니다.

_안녕하세요. 영화감독 이용주입니다. 영화와 관련된 첫 인터뷰를 건축계에 종사하는 기자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2. 영화감독이시니까 영화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개봉은 언제쯤 하나요?
_개봉날짜는 감독 소관이 아니라 배급사에서 결정합니다. 아직 배급사도 정해지지 않았고 주연배우 캐스팅도 안 됐어요. 그래서 현재의 가장 주요한 관건은 캐스팅이 돼서 올해 안에 찍을 수 있느냐, 그것이 목표죠. 그러니까 ‘언제 개봉할까’하고 생각하는 건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 이름 짓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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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름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 – 이용주 영화감독
3. 영화 제목이 <건축학개론>이에요. 이러니 건축기자가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_2003년 초고를 쓸 때부터 지금까지 쭉 <건축학개론>이었어요. 그 당시부터 이상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죠. 사실 데뷔작인 <불신지옥> 제목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거든요. 흥행이 안 된 이유가 제목 때문이라고 하신 분들도 많고요. 이번 영화는 명필름에서 제작하는데, 처음 미팅할 때부터 제목을 일임하겠다고 했어요. 다시는 제목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는데 오히려 대표님께서는 좋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투자사랑 배급사가 결정되면 회의가 한 번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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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용주의 데뷔작 ‘불신지옥’ 포스터
4. 영화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_시나리오 내용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대학교 1학년인 음대생 여자주인공과 건축과인 남자주인공이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에서 만나게 되죠. 그러면서 서울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요.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쌓은 연분이 쭉 박제가 되었다가, 클라이언트로 찾아온 여자주인공과 건축가가 된 남자주인공이 재회를 하게 되는 것이죠. 과거가 도시에 대한 거시적 관점의 이야기라면, 현재는 주택에 대한 미시적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공간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에요.

영화감독인 그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제목 못지않게 그의 이력에 호기심이 생긴 탓이었다. ‘건축과 졸업 ⇨ 설계사무소 4년 근무 ⇨ 영화감독 데뷔 ⇨ 현재 2번째 영화 준비 중’이라는 매끄럽지 않은 연결고리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_●

5. 건축과만 졸업하신 게 아니라 실무까지 하셨다고 하던데,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_서울건축에 다니다가 1999년 6월부터 휴직을 했고, 서류상으로는 2000년 1월 1일부로 퇴사처리 됐어요. 그러니 그때만 해도 영화가 낯설었죠. 건축으로 따지면 생물학과에 다니다가 3학년으로 편입한 이방인의 느낌이랄까. 영화 <살인의 추억>의 연출부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들었어요. 당시의 저는 1~2년차밖에 안 되는데 다른 연출부들은 영상원이나 아카데미 출신의 7~8년 선배인데도 저보다 어린 경우도 많았고, 저는 용어도 제대로 모르는데 그들은 자신만만하고…

_2007년쯤 되서야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있겠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과연 내가 영화감독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굉장히 컸어요. 어마어마한 물음표를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살인의 추억> 연출부를 하고 나니까 조그맣게나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러면서 입봉(상영 데뷔) 준비를 시작했어요. 물론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없죠. 오히려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니까요.

6. 영화 쪽으로 선회하신 분명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_제가 대학 재수를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수를 하면서도 건축과 이외에 다른 학과를 생각한 적은 없었고요. 그러니 건축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도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어렴풋이 미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영화는 상상도 안 됐죠.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입학한 터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선배들 쫒아 다니면서 스터디도 하고. 어릴 때라 조금 삐뚤어진 면도 없잖아 있었겠지만 당시의 저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서클을 하면서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을 알게 됐고, 결국은 선배들한테 건축을 배웠죠. 책 아저씨한테 책도 많이 사고!

_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한울건축에 입사했어요. 한울건축 2년을 다니면서도 제가 건축 이외에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고요. 하지만 학교 다니면서 키웠던 설계에 대한 판타지와 꿈은 완전히 깨지게 됐죠. 주변을 돌아보니 하루 12시간 이상씩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하더라도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면 너무 처절한 거에요. 일 자체도 힘든데 이상까지 무너졌던 것이죠.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집중력이 상실되니까 개인생활도 없어지고 못 견디겠더라고. 그러면서 입사 6개월 만에 제일 늦게 출근하는 직원이 됐어요. 제가 유난히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건 막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건축이라는 것이, 그리고 설계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굉장히 비합리적이라고 느꼈어요.

_그러던 중에 친한 친구들까지 하나둘씩 유학을 가는 거에요. 2년차가 되니까 저만 남더라고요. 물론 저도 졸업 이후 줄곧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상 그럴 수 없었어요. 그들이 저의 에너지였는데 힘이 쭉쭉 빠졌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간구한 방법이 환경을 변화시켜보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서울건축으로 옮기게 됩니다. 서울건축을 선택한 이유는 실시설계와 엔지니어링 부분이 강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쪽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렌조 피아노나 노만 포스터의 스타일을 좋아했거든요. 게다가 100명이 넘는 규모니까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처우가 합리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때마침 IMF라는 시기와 맞물려 상황이 안 좋기도 했고, 그곳의 단점을 피해 이곳으로 오니 그곳의 장점은 단점이 되고… 결국 건축이라는 일 자체에 지친 것이라 회사를 옮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던 거에요. 그러면서 점점 회사에서 겉돌기 시작했고, 취미로 보던 영화와 영상편집 작업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됐어요.

_그쯤 최초로 ‘건축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드라마PD가 재미있겠다 싶어 방송국 시험에 응시했는데 보란 듯이 1차에서 떨어졌죠. 하지만 한번 마음이 동하고 나니까 걷잡을 수 없는 거에요. 그때 누군가 단편영화를 찍어보라는 말을 했고, 한겨레 문화센터에 등록해서 영화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고, 하루 종일 시나리오 작업만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됐어요. ‘그럼 아예 1년 정도 회사를 쉬면서 영화에 대한 나의 가능성을 타진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영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살인의 추억> 연출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건축보다는 영화라는 결정을 하게 됐어요. 물론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미 <건축학개론>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선배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실에서 잠깐 일하며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을 진행했죠.

7. ‘가능성을 타진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도전했던 시간동안 어떤 가능성을 타진하셨나요?

_가능성은 지금도 타진 중이에요. 다만 ‘영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 대한 것은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과연 내가 버틸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이죠. 경제적으로 견딜 수만 있다면 영화라는 일은 너무 재미있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어도 225만 원으로 1년을 사는 것은 제 나이에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 벌릴 수도 없고… 결국 연출부 생활이 끝날 때쯤 되니까 700만 원이라는 카드빚이 남더라고요. 이 빚은 습작이라고 생각하고 썼던 시나리오를 회사와 계약하게 되면서 단번에 갚았어요. 제 인생에서 두 번째 장편이자 <건축학개론>의 모태가 된 시나리오인데, 더 큰 의미는 ‘아,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은 데에 있죠.

이야기 중간에 기자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마다 단박에 건축으로 비유를 해준다. ‘이 사람, 건축을 했지!’라는 생각에 영화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나에게도 건축적 비유가 더 익숙한 건 당연하다. _●

8. 영화를 하는 현재의 삶은 어떠신가요?

_자유롭다고 하면 너무 미화시킨 것 같고, 스트레스를 좀 덜 받고 산다고 할까. 단적으로 늦잠 때문에 매일 혼나야 했던 직장생활과 비교해보아도, 작지만 굉장히 큰 만족이거든요. 아직 첫 영화의 경험만 있지만, 촬영하면서 분비되는 엔돌핀도 어마어마해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내가 쓴 글을 장면으로 구현할 때의 긴장감과 희열은 거의 마약 수준이에요. 마치 사진의 필름을 처음으로 현상할 때 인화지에 상이 떠오르는 순간이랄까. 게다가 영화는 1년, 6개월 뒤를 전혀 예상할 수 없어요. 현재의 저는 한 달 후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고요. 예를 들어, 제가 건축을 했다면 언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어쩌면 영화에 있어서는 이런 불안정성이 매력적일 수도 있죠.

9. 삶에 대한 만족도는 크게 향상되셨네요. 그렇다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보상을 받고 계신가요?

_지금도 일반적인 소득 수준은 소위 말하는 ‘루저’에요. 연출부 시절에 비하면 10배 이상 늘었지만 그래봤자 연봉 2000만 원 정도? 제 나이에 이 정도 돈으로 산다는 게 이해되세요? 하지만 행복해요. 이유라면 준거집단이랄까. 입봉도 했고,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니까요. 다만 증권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멀리하고 있죠.

_부모님들도 입봉한 이후에는 별 말씀 없으세요. 예전에는 집에서 영화보고 있으면, 저는 공부하는 건데 남들이 보면 영락없이 노는 사람이니 많이 답답해하셨죠. 지금은 일정 부분은 포기하신 것도 있고 극장에서 제 영화가 상영되는 것도 확인하셨으니까, 오히려 영화감독 아들 뒀다고 자랑하시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렀는데, 그때 봉준호 감독님이랑 송강호 선배님이 오셨어요. 어휴, 당시 가족들과 친척들의 분위기란… 아주 작은 순간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제가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것들이죠.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청룡영화상에서 각본상 받은 것이고요. 공중파에 나와서 말도 하고, 전화도 쇄도하고 했으니까요.

_아마도 제가 건축을 하고 있었으면 굉장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고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라도 효도하고 사니까 저도 행복한 거죠. 물론 매 순간이 행복하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행복할 때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네요. 부정적인 성격인 데다가 엄살도 심하거든요. 1년 넘게 하루 종일 집에 박혀서 시나리오 쓸 때는 정말이지 폐인이 따로 없어요. 밤낮 바뀌는 건 일도 아니고 고통의 연속이죠.

10. 시나리오 쓰는 일이 그렇게 고통스럽다면, 작가가 잘 쓴 시나리오로 연출하실 생각은 없나요?

_우리나라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유독 많아요. 바꿔서 이야기하면 시나리오를 잘 쓰는 사람은 감독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잘 쓴 시나리오를 다른 사람 주고 싶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시나리오 잘 쓰기로 유명한 이 현 감독님이나 김대우 감독님도 작가로 시작하셨죠. 그리고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시나리오를 잘 쓰지 않으면 힘들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시나리오는 별로인데 연출은 잘한다.’라는 말을 믿지 않거든요. 실제로 시나리오를 잘 쓰시는 감독님들이 연출도 잘 하세요. 시나리오라는 것이 결국은 영상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이라 좋은 시나리오는 읽는 순간 그림이 그려지죠.

11. 시나리오 작업과 연출 중에서 어떤 작업이 감독님께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_‘어느 작업이 더 좋냐’, 혹은 ‘어느 작업을 더 잘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입면도를 더 잘 그리느냐, 아니면 평면도를 더 잘 그리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아요. 상상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니까 나눠서 생각할 수는 없죠. 종종 설계와 시공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건축가가 시공을 하지는 안잖아요. 목수가 의자를 만들 때 도안을 그리면서 어디에 톱질을 할지 염두에 두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12. 점점 매체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감독님은 영화만 하실 건가요? 영화도 요새는 3D를 넘어 4D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_일단 경계를 두고 있지는 않아요. 모든 영상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지면 하고 싶죠. 단적인 예로,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시스템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갖고 있지 못하는 매력이 드라마에는 있으니까 저도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는 있죠. 타 장르에 대한 폄하는 전혀 없어요. 분야가 다를 뿐이죠. ‘영화도 했으니 드라마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드라마를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실례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만 고집하느냐, 아니면 두 가지를 병행하느냐로 능력이나 자질을 가늠하는 것 보다는 이 또한 개인의 성향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만 저처럼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감독들은 여러 생각을 해보는 것이죠.

_3D나 4D는 형식이라고 봐요. 중요한 것은 이야기니까요. 건축에서도 신공법이 새로운 형태나 구조를 충족시켜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신공법을 설계에 반영하지는 않잖아요. 프로젝트에 요구되는 적합하고 경제적인 방법을 선택해서 디자인하는 것이지. 저도 영화감독으로서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기는 하죠. 하지만 3D나 4D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게다가 안경을 쓴 상태로 영화를 봐야 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고 아직까지는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또 다른 기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아, <아바타>를 보면서 3D가 액션보다 공포영화에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결국은 연출을 하는 하나의 기법이니까 장르를 떠나서 이야기에 적합한 장면을 만들 수 있다면 필요한 것이지요.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고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향후 5년까지는 이 정도 관심 수준에서 머무를 것 같네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감독이 됐다는, 나머지 것을 다 포기하고라도 그저 영화가 하고 싶어서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는, 하지만 때때로 초심을 잃고 포기했던 욕망들이 고개를 드는 바람에 끊임없이 반성한다는 이용주 감독이다. 건축을 떠나온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의도적으로 채찍질 당하고 있다. 건축에 대한 애정은 건축을 공부할 때만큼이나 여전해 보인다. _●

13. 어쨌든 <건축학개론>이 개봉하면 제목만으로도 건축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텐데 이 점에 대한 배려랄까, 아니면 좀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_딱 하나, ‘고증만큼은 제대로 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죠. 그동안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춰진 건축가의 모습을 두고 건축하는 사람들이 분노하거나 조소를 날렸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스케일 대고 선을 긋거나 칼질을 하는 장면, 프리젠테이션에 사용할 모델을 들고 버스를 타는 장면, 장중한 음악을 틀어놓고 역작마냥 스케치를 하는 장면을 보면 제 입장에서는 화도 나죠. ‘작가가 단 한 번도 건축가 리서치를 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고증보다 중요한 것이 시청률과 관객수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_그런데 반전은 건축하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확실하게 고증을 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주변에서 건축하시는 분들이 말리시더라고요. ‘기왕이면 좋게 그려라’, ‘건축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해라’라고 하시지만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좋게만 그릴 수 있겠어요. 게다가 <건축학개론>은 멜로 영화이지 건축 홍보영화가 아니에요.

_시나리오를 쓰면서 이런 생각은 했어요. ‘영화가 개봉되면 건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요청이 들어올 것이고, 그럼 가서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왜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표현했나요?’ 제가 생각하는 건축하는 사람들의 단상이에요. 건축하는 사람들은 자기 것이 훼손되고 다르게 보인다는 것에 다른 분야보다 굉장히 민감한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영화에 나오는 형사들 보세요. 실제와 부합되는 점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세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건축학개론>의 주요한 흐름은 멜로입니다. 30대 초반이 주택을 설계한다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물론 이것도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타당성을 부여받지만, 실제 건축하는 사람과의 극단적인 간극은 없을 것입니다.

14. 다분히 대중문화인 영화를 하는 입장에서 건축의 대중화, 건축과 대중의 소통이라는 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_예전에 씨네21에서 곽희수(이뎀건축) 소장님과 대담을 한 적이 있어요. 저의 화두는 ‘건축과 학생들, 그리고 건축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관념적인가’였어요. 구체적인 물성을 가지고 그것을 직조하는 일을 하면서 왜 그렇게 관념적인 단어들로 이야기하는지, 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하는지 궁금했어요. 주택을 지으면서 왜 철학책에 나온 단어들로 설명하는 하는지, 건축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은 대중을 왜 건축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지에 대한 우문이 생겼어요. 아니, 생겼다기보다는 예전부터 제가 풀지 못한 질문들이었죠. 건축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대중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우매하다고 이야기 하는 건 문제가 있죠.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가 재미없어요.

_비단 건축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죠.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웃기지만, 분명 웃기겠지만, 주택에 대한 관점과 건축시장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건설사가 찍어내는 아파트가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주거문화잖아요. 아파트가 아니라고 하면 요즘 땅콩집이 굉장히 이슈인데, TV에도 많이 나오고 책도 읽었어요. 건축적인 면에서는 제가 이야기할 것은 아닌 것 같고, 다양한 주택문화에 이바지한다는 면에서는 좋은 것 같아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땅콩집이 전국에 쫙 깔린다고 생각하면 숨 막혀요. 비 건축인인 제 입장에서는 일종의 대안으로서 좋은 현상이라 봅니다. 동시에 땅콩집을 바라보는 건축가의 시선도 궁금해요. 일반 대중의 시선과 전문가들 생각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어서 어떤 의견 차이를 보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죠.

15. 인터뷰 소감과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_의도치 않게 제가 이러쿵저러쿵 건축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네요. 나름 혹독하게 겪고 나와서 할 말이 많았나 봅니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도 건축에 대한 저의 짝사랑을 표현한 것이니까요. 4년이라는 짧고도 긴 실무를 하면서 해보지 못했던 주택설계를 영화 속 집짓기를 통해 이루려고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건축학개론> 개봉하면 많이 봐주세요!

_마지막으로 범건축 여러분을 비롯해서 건축을 하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본인이 하는 일과 꿈에 대해서 갖고 있는 열정만큼 그 과정과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집단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자신이 덜 힘들고 더 행복할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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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건축 가족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세지!
건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을 했던 사람을 만나는 일 또한 즐겁다. 건축 밖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 뿐 아니라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귀동냥 할 수 있으니까. 이용주 감독은 기자의 욕심을 한껏 채워주었다. 때때로 과거를 회상하며 다소 과격해지는 그의 감정을 진정시켜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라는 매력적인 분야만큼이나 매력적인 감독이다. 건축기자 입장에서는 그 매력의 원천 저 깊은 곳에는 반드시 건축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싶다. 영화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이 건축이니까. 아무쪼록 <건축학개론>이 멀지 않은 시간에 무사 개봉하길 바란다. 건축하는 사람들에게도 소소하지만 이야기꺼리 많은 이벤트가 되어준다면 더 좋고!

당황스러운 인터뷰에도 기꺼이 응해주신 이용주 감독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_●

BAUM P.R Section | BAUM ARCHITECTS
디자인이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는 시점에서 즉각적인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미래는 통합적인 디자인의 혁신과 앞을 내다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범건축은 디자인의 미래를 준비하는 슬기로움으로 건축을 본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 할 것입니다.